3. 트레이싱은 위법한가요? – 저작물의 보호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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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나 다른 사람의 그림을 트레이싱(tracing)한 경우 다툼이 있습니다. 원 사진 또는 그림의 구도, 인물 구성 등에서 선을 따서 베껴 그렸다면 이 트레이싱한 그림은 저작권을 침해한 것일까요? 일단 한 줄짜리 답을 말씀드리면, “저작물의 창작성을 침해하는 트레이싱은 위법할 수 있습니다.”

(1) 트레이싱한 대상이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저작물임.

->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저작물”은 문학, 학술 또는 예술의 범위에 속하는 창작물입니다. 즉, 저작물에는 창작성이 있어야 합니다. 저작권법은 저작물이 가진 고유한 창의적 표현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만약 다른 사람의 사진이나 그림, 영상물의 한 장면과 같은 저작물을 그대로 트레이싱하긴 하였지만, 그 작품 자체가 저작물이 아니라면(즉, 창작성이 없다면) 저작권법 위반이 아닐 것입니다.

또한 저작권법 제7조에 따라 보호받지 못하는 저작물을 트레이싱하는 것은 저작권법 위반이 아닙니다. 실제로 보통 문제되는 사진이나 그림이 이에 해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요.

제7조(보호받지 못하는 저작물)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것은 이 법에 의한 보호를 받지 못한다.
1. 헌법·법률·조약·명령·조례 및 규칙
2.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고시·공고·훈령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
3. 법원의 판결·결정·명령 및 심판이나 행정심판절차 그 밖에 이와 유사한 절차에 의한 의결·결정 등
4.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작성한 것으로서 제1호 내지 제3호에 규정된 것의 편집물 또는 번역물
5. 사실의 전달에 불과한 시사보도

(2) 트레이싱한 행위가 지적재산권의 제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음.

-> 우리 저작권법은 제2절 제2관에서 일정한 경우에 저작권자의 저작권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전 글 (“2. 비상업적으로 썼는데요? “) 에 자세히 설명해 두었습니다. 아주 간단히 다시 쓰자면, 원 저작물을 복제한 것이 학교 교과서에 싣기 위해서이거나 시사보도를 위해 불가피했다거나, 사적 이용(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혼자 집에서 그림 연습 등)을 위해서였다면 위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위 두 가지 요건에 해당하는 트레이싱은 일견 원 저작자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몇 가지 생각해 볼까요?

(1) 사진을 일러스트로 트레이싱 하였습니다. 사진이 그림으로 바뀌었으니 저작권 침해가 아니지 않나요? NO
-> 매체가 바뀐다고 하여 저작권 침해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사진을 그림으로 트레이싱하였더라도, 원래 사진이 저작물이었다면 원작자의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침해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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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미국에서 있었던 대표적인 트레이싱 저작권 분쟁 사례입니다. Fairey라는 예술가가 왼쪽의 연합뉴스 사진을 이용하여 오른쪽의 작품을 제작, 포스터 등으로 만들어 판매했습니다. 연합뉴스가 Fairey에게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한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어요. 연합뉴스는 Fairey가 허락받지 않고 저작물을 사용하여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고, Fairey는 공정이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2011년에 비밀 조정(서로 잘 합의하여 재판을 끝까지 하지 않음)으로 끝이 났기 때문에 실제 쌍방이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였는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당시 판사가 “어차피 연합뉴스가 승소할 상황이니 서로 잘 합의하라”는 식으로 말을 하여 조정이 이루어졌습니다.

(2) 다른 사람의 그림을 트레이싱하였지만, 제 나름의 채색 기법으로 달리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니 괜찮지 않나요? NO
-> 나름의 채색 기법으로 달리 표현한 새 작품(2차적 저작물)도 저작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원작자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없던 일로 되지는 않습니다. 2차적 저작물의 보호는 그 원저작물의 저작자의 권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저작권법 제5조 제2항).  즉, 만약 위 예에서 Fairey의 그림을 김갑돌이라는 한국의 동양화가가 트레이싱하여 동양화로 표현하였다면, 김갑돌은 Fairey의 작품이 연합뉴스 사진의 저작권을 침해하였는지와 별개로, Fairey의 그림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일 수 있습니다. Fairey의 그림에도 저작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김갑돌은 연합뉴스의 사진의 저작권도 침해한 것일 수 있습니다.

위에서 본 두 가지 요건 ((1) 트레이싱 한 대상이 저작물일 것 (2) 저작권 제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을 것)을 기준으로 트레이싱의 위법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아, 물론, (3) 트레이싱 한 것이 맞을 것 또한 선행 요건이지요. 비슷하긴 한데 트레이싱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어쨌든  이처럼 법적 기준은 매우 간단하고 명확합니다. 다만 현실적인 개별 사건에서는 (1) 저작물인지 아닌지 (3) 트레이싱 한 것이 맞는지를 전문가가 아니면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분쟁이 치열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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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위 사진은 현재 우리나라 법원에서 재판 계속 중인 사건입니다. 왼쪽 사진이 유명한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의 솔섬 사진이고, 오른쪽은 대한항공 광고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마이클 케나 측은 그림자의 길이나 사진의 구도 등에 사진의 창작성이 있는데, 오른쪽 대한항공 광고사진은 거의 같은 시간대, 구도, 장소에서 촬영되어 왼쪽 사진을 베꼈으니 저작권 침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한항공은 오른쪽 사진은 구름, 색채 등  표현방식이 케나의 사진과 전혀 다르고, 자연풍광은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니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직 이 사건은 진행중입니다.

이러한 전문적인 다툼은 해당 예술의 전문가가 아니면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저도 봐도 잘 모르겠네요. 따라서 이런 경우 전문가 증언이나 감정 결과가 재판 결과에 많이 반영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내 그림을 누군가가 트레이싱 하여서 이것을 법적으로 문제삼고 싶다면 (1) 트레이싱 한 것이 맞고 (2) 내 그림이 저작물이고 (3) 저작권 제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원작자가 입증해야 합니다. 쉽지는 않지요. 하지만 위 각 요건에 해당하는 트레이싱이라면, 현실적으로 민형사상 법적 절차를 밟을 것인지와 별개로, 위법할 수 있다는 점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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